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아이를 키우느라 종종 정기적으로 기도, 성경 공부, 교제 등을 통해 영적인 힘을 공급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아이의 병으로 인한 자신의 교회 결석, 순번으로 돌아오는 예배 시간에 아이를 보는 책임, 그리고 그 외의 여러 책임들로 인해 영적 영양 섭취가 부실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당신의 영혼을 야위고 메마르게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 오래 머물게 되면, 혹은 자주 이런 상황에 빠지게 되면, 영적으로 쉽게 침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당신의 기쁨과 확신까지 바닥이 나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 도널드 휘트니1
예전부터 이러한 글을 쓰려고 했는데, 게으르게도 이제야 글을 쓰네요. 우리 교회는 영아-유치부 아이들이 참 많고, 그들을 돌보는 부모들도 많은데 말이지요. 현재 시광교회에는 54명의 영아들과(문래 44명, 신촌 10명) 19명의 유치부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양육하는 부모님들이 계시지요. 물론 시광교회는 아이들을 맡기고 주일예배를 할 수 있도록 돌봄을 제공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편할리는 없지요. 그러한 부모들을 위해, 짧은 조언을 남기려 합니다.
첫째, 지금이 힘든(그러나 성장할 수 있는) 시기임을 받아들이기
청년기를 지나 결혼을 하고 둘 만의 시간을 보내다가 아이가 생깁니다. 사랑스러운 아이지만 절대적인 돌봄과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이를 열심히 키우는 것은 쉽지 않지요. 당신은 아이가 자기 위해서 자지 못해야 하고, 먹기 위해서 먹지 못해야 하며, 편안히 쉬게 하기 위해서 쉬지 못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이전에 누리던 신앙생활도 잃는 것 같이 느껴질 겁니다.
유진 피터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대인들은 행복을 어쩌다 찾아오는 행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행복을 권리라고 믿지요.”2 아기를 처음 키우는 시기야 말로 이 ‘권리’ 의식을 벗어던질 수 있는 때입니다. 아이가 누릴 행복을 위해 내 행복(또는 안락)을 줄이는 것. 내가 더 힘들어지고 괴로워지는 데도 탓할 사람이 없는 시기(아이를 탓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 시기가 우리로 하여금 인생을 진지하게 대하게 하고, 철이 들게 하지요.
하지만 우리가 안락과 행복을 당연한 권리로 생각한다면, 주말에 잘 차려입고 샤방(?)하게 외출하고 데이트하며 소비하는 시간과 예배 시간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온전히 찬양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듣고(때로는 평가도 하고) 누리는 것을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이 모든 것들이 누군가 나를 위해 희생해 주었기 때문에 누리게 된 것임을 배우는 시기가 바로 아이들을 키우는 시기입니다.
혹시 “우리 교회는 아이 부모들을 위한 장소, 시스템, 배려가 너무 부족해.”라고 생각하며 우리의 영적 침체의 책임을 공동체로 전가하고 싶으셨다면, 과거에는 이보다 훨씬 더 안 좋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꼰대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라떼는!!!). 하지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는 더 힘들었는데 예배 잘 드렸어!”가 아니라, “장소와 시스템과 배려가 더 나아져도 안 힘들지는 않을겁니다.”입니다. 그러니 일단 잘 인내하고 견딥시다. 우리에게는 어쨌든 사랑스러운 아이의 웃음이 있지 않습니까.
둘째, 예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기
우리는 종종 좋은 예배의 잣대를 ‘내가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그것도 좋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예배를 ‘우리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라고, 그 본연의 정의를 다시 내린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좋은 예배는 ‘내가 무엇을 느꼈는가’에 달려있기보다는 ‘하나님이 이 예배를 어떻게 받으시는가’에 달려 있게 되겠지요.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아이를 안고 차를 타고 교회에 와서 찬양을 하다 아이가 울면 우유를 먹이고, 설교 듣다 기저귀를 갈고, 아기띠를 들쳐매고 우는 아이를 달래다가 시간이 다 지나간 예배를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전 과정을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루 종일 조금 피곤했고, 졸렸고, 집중을 못했고, 때로 마음이 어려웠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안에서 당신의 인생 전체를 받으십니다. 그리고 그 중 주일에 드리는 (그 정신없던) 하루를 소중히 여기십니다. 그러니 당신도 그 시간을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셋째,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평상시에 이상적인 경건의 시간을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대신 지금의 시절에 맞는, 작지만 진실한 습관들을 시도해 보십시오.
아이를 안고 그 위로 짧게 축복기도를 드리기
설거지나 빨래를 하며 성경 본문이나 찬양을 들려 듣기
한 구절의 말씀을 외워 하루 종일 되새기기
“주여, 도우소서”같은 한 호흡의 기도를 자주 드리기
그리고 무엇보다, 공동체를 사랑하고 기대시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시광교회라는 몸의 한 지체입니다. 다른 지체들의 기도와 찬양과 말씀이 당신을 위해서도 드려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당신이 다른 이들을 통해 은혜를 공급받는 계절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영아-유치 부서에서는 다양한 활동들과 섬김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가급적 함께 해주세요.
넷째, 우리 구주의 은혜를 바라보기
지금 느끼는 이 메마름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자랍니다. 밤이 영원하지 않음을 인해 감사합시다(그리고 밤이라기에는 아이를 키우는 기쁨도 만만찮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계절을 통과하며 당신의 신앙은 오히려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풍성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 즉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성취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이 계절이 가장 선명하게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크면 크는 대로 더 쉽지 않은 과제가 주어질 것입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커서는 다양한 염려거리를 안겨줍니다. 그리고 훨씬 더 자녀를 통제하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좌절할 일도 생길 수 있지요. 그래서 더 기도하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저는 교회의 새벽기도가 나이든 사람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나쁘게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나이가 좀 들어야 기도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목사인 저도 말이지요.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아기가 되어, 하나님의 품에 안겨 살아가게 됩니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3
당신이 지금 안고 있는 그 아이처럼, 당신의 영혼도 하나님의 품에 안겨 있습니다. 발버둥 칠 필요 없이, 무엇을 더 해내야 한다는 압박 없이, 그저 그분의 품에 머물러도 됩니다. 지금 당신의 잔이 비어 보일지라도, 그 잔을 채우시는 분은 여전히 한결같으십니다. 이 계절이 지나면, 당신은 분명 이렇게 고백할 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분은 그때도 나를 안고 계셨구나.”
다양한 연령대를 위한 글을 또 생각해 보고 쓰겠습니다. 다른 계층들은 조금만 참아주시길.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함께 나누는 생각 0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생각을 나눠 주세요.